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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사용기

시그마 DP1, 나홀로 떠나는 길거리 출사..



예전에 리뷰를 위해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다루면서 던졌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있었다.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고르는 기준이다. 콤팩트라는 표현에 그 답이 있다. 작고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고, 쓰기 편하고, 배터리 오래 가며, 내구성이 좋을 것. 간단히 줄이자면 휴대가 간편한 완전자동 똑딱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이다.

그럼 이들 요소를 각각 짚어보자. 작고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다. 크기가 작아지면 무게도 가벼워진다. 다만, 휴대가 간편하려면 작고 가벼운 것과 별도로 두께가 얇으면서, 또, 그 크기도 적당히 작아야 한다. 대략 담배케이스 정도를 연상하면 적당하지 싶다. 꽤 오랜 시간동안 휴대가 간편한 크기의 기준을 담배케이스로 삼았으니까.

쓰기 편하다는 건 그냥 간단히 켜고, 별다른 움직임 없이 셔터만 누르면 사진 잘 나와준다는 의미다. 완전자동이지만,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줌 기능이 지원되면 좋다. 그것이 광학줌이든 디지털줌이든, 이 문제는 2차적인 문제다.

배터리가 오래 간다는 건, 본바탕에서야 저전력소모 설계가 중요하지만, 같은 기반에서 말한다면 LCD 크기가 작은 편이 유리하다. 다만, LCD 크기가 작아지면, 앞서의 쓰기 편할 것이라는 요소와 배치된다. 즉, LCD 크기를 그대로 둔 채 전력 소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 된다.

내구성이 좋을 것, 이건 처음에 얘기한 작고 가벼울 것이라는 요소와 어긋나기 십상이다. 내구성이라는 건 첫 번째, 외형의 튼튼함, 두 번째, 오염으로부터의 안전함을 갖고 말할 수 있다. 튼튼한 외형은 그만큼 부피를 증가시키거나, 금속재질을 써서 무게를 증가시키기 십상이다. 오염으로부터의 안전성을 띄기 위한 대표적인 요소로는 방진방적 기술의 도입이지만, 이것 역시, 방진방적을 위한 추가 구조물이 필요해지는 만큼 콤팩트함의 일부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

매체 버즈에 속해 각족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리뷰하면서 한동안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는 V610같은 모델을 제외하고는 사실 콤팩트라는 요소와는 거리가 있었다. 작고 가볍지도 않았고, 하이엔드 똑딱이와 같은 형상의 디자인으로 인해 휴대도 불편했으며, 쓰기도 불편하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짧았다. 내구성은 내 카메라가 아니라, 적시거나 떨어뜨려 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논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에 입각해서는 무엇 하나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양이 없었다.


여기서 반전. 글 쓰는 일을 잠시 접었던 관계로 꽤 오랜만에 손에 잡을 수 있었던 코닥의 1천만 화소급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접하면서 코닥에 대해 갖고 있던 호감이 사라졌다. 코닥 이지쉐어 V1003 모델이었다. 이 카메라는 작고, 가벼워 휴대가 간편했고, 기존 코닥 카메라들과 달리, 디자인도 예쁘장했다. 이런, 처음에 말한 기준에 따르면 이전 모델들에 비해 보다 나은 조건을 갖고 있는 이 카메라가 비호감이 되었다는 건, 내가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서 갖고 있는 호감의 요소가 다른 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것이 문제의 코닥 이지쉐어 V1003이다.


아래의 두 사진은 저 윗 사진 속 주인공, 이지쉐어 Z612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이 속에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던 까닭이 담겨져 있다.



다시 서두의 콤팩트 디지털카메라가 갖추는 요소로 돌아가 보자.

뭔가 빠졌다.

뭐가?

카메라라는 기기의 태생에서 출발하는 사진에 대한 얘기가 빠졌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인데, 카메라를 고르는 요소에 사진에 대한 얘기가 없다. 단지 스쳐지나가듯 사진 찍기 편하고 라는 표현만 섞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서 갖고 있는 호감의 요소는 바로 이들 속에 들어있지 않은, 사진의 품질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위 두 샘플사진의 원본 100% 크롭이다. 원본상태에서의 화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코닥 이지쉐어 M863 모델로 찍은 사진 샘플과, 원본 100% 크롭이다.


단순히 사진 한 컷으로만 보여줬지만, 8백만 화소 급 이하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서 느꼈던 화질과 색감, 그리고, 말 그대로 콤팩트, 슬림, 큐티라는 요소가 모두 가미된 최근의 코닥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얻은 사진에서 나타나는 화질과 색감은 너무도 다르다. 사진 품질을 두고 가졌던 호감이기에, 이와 같은 차이는 비호감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결정적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서두가 길었다. 엄청 길었다.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건 시그마 DP1이라는 한 카메라면서, 거창하게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고르는 요소로 말문을 열었다. 이 장황한 서두는 지금부터 풀어보고자 하는 글에 대한 안전장치다. 글 속에 담겨진 DP1의 단점을 갖고 DP1을 평가하지 않게끔 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안전장치다.


DP1은 출시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모아온 카메라다. 가장 큰 핵심에는 SD14에 쓰인 포베온 X3 센서가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 있다. 전문가용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에 쓰인 대형 센서가 적용된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는 DP1이 두 번째다. 단, 첫 번째에 해당하는 소니 R1의 경우, 대형 줌렌즈가 적용된 커다란 카메라기에, 사실상 콤팩트한 크기의 디지털카메라로는 DP1의 최초인 셈이다. 이 독특한 카메라는 SD14가 시장에 선보이고도 무려 2년이 지난 후에서야 소비자들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2년이라는, 전자제품의 주기로 본다면 수 차례 바뀌었을 수 있는 긴 시간을 왜 관심 어린 시선으로 기다렸던 것일까? 분명 이것은 일반적인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DP1은 기존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표방하지도, 참고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았다. 만일 시그마가 DP1을 선보임에 있어 이런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고려한 부분이 단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아마 DP1은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DP1을 글로 풀어보겠노라 맘을 먹었을 때, 나는 무엇보다 이 카메라의 포지셔닝에 대해 가장 크게 고민했다.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무한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 그리고, 찍혀진 사진을 전용 컨버팅 툴을 통해 후처리해줘야만 볼만한 사진이 나오는 시츄에이션, 달랑 환산 28mm뿐인 화각. 이것은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쥐는 그립감에서 감수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요소들은 렌즈 교환식 DSLR 카메라에서도 고려할 사항이 아니기도 했다. 구태여 비슷하게 난감해했던 상황을 갖다 붙이자면, 처음으로 롤라이35S를 손에 쥐고 거리에 나섰을 때라고나 할까.

센서 얘기는 일단 접어두고, 왜 28mm일까를 갖고 먼저 얘기해보자. 이전에 단초점렌즈 똑딱이를 써보지 않은 건 아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한동안 나는 콘탁스 I4R를 썼다. 135포맷 환산화각으로 약 40mm가 나오는 단초점렌즈 똑딱이다. 일반적으로 40mm~50mm는 사람이 보는 눈의 화각과 같다고 한다. 이름하여 표준화각.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사람이 바라보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펜탁스의 리미티드 렌즈에는 31mm, 43mm, 77mm라는 매우 특이한 화각이 있다. 이것들은 각각 눈에 보이는, 눈으로 보는, 집중해서 보는 화각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고 한다. 즉, I4R의 환산 40mm도 시원스럽게 나올만한 화각은 아니라는 소리다.

135포맷 화산 1.5배율을 갖는 APS-C 규격 DSLR 카메라의 경우, 표준렌즈 대용으로 35mm 단렌즈를 즐겨 쓰곤 한다. 그런데, 같은 135포맷이라도 과거의 RF방식 카메라에서는 50mm가 아닌 35mm를 표준렌즈로 쓰곤 했다. 아무래도 바라보는 시각일 경우, 모든 영역을 아우를 정도로 화각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DP1의 28mm를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135포맷을 기준으로 할 때, 일반적으로 30mm 이상의 화각에서는 왜곡이 잘 억제되어 나타나지만, 그 이하의 화각으로 갈수록 왜곡은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DP1의 28mm 화각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DP1의 센서는 135포맷 대비 1.7의 환산값을 적용하며, 달려 있는 렌즈의 물리적인 초점거리는 16.6mm라는 수치를 가진다. 즉, DP1으로 찍은 사진은 왜곡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DP1의 운용 범위를 꽤나 축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 이것은 남산 포토아일랜드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목적으로 3컷 촬영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겹치도록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광각 왜곡 문제로 인해 파노라마 사진으로 완성시키는데 실패했다.









이번에는 그 말 많은 센서 얘기를 갖고 풀어 나가보자. DP1 뿐 아니라, 시그마의 모든 디지털카메라들은 이 센서를 빼고 말하자면 아예 할 말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시그마 디지털카메라에서 센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포베온 X3 CMOS 센서, DP1에 적용된 이 센서는 시그마의 전작인 DSLR 카메라, SD14에 쓰인 그것과 같다. 평면상에 R, G, B 화소를 차례로 배열한 일반 센서와 달리, 포베온 X3 센서는 각 색상 채널을 각기 다른 평면상에 배열하여 각각의 모든 화소가 온전한 R, G, B 값을 갖도록 했다. 이런 색상 표현력은 화상센서에 있어 혁명과도 같았다. 비록 이 포베온 X3 센서를 갖춘 카메라는 SD14밖에 써본 것이 없지만, SD14를 잡았을 당시 느꼈던 첫 인상을 떠올려본다면 DP1에 대한 2년 간의 기다림을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 이것은 원본 이미지를 460만 화소급으로 SPP 변환한 후, 리사이즈 없이 크롭만 한 것이다. 아마 이렇게 리사이즈하지 않은 원본 이미지 샘플을, 그간의 시그마 디지털 카메라 리뷰에서 수도 없이 봐왔을 것이다. 바로 이 원본 이미지의 품질에 포베온 X3 센서의 매력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은 오로지 화질 하나만 두고 말했을 때일 뿐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포베온 X3는 오로지 색상 하나를 위해 노력한 결실이기에, 그 밖의 다른 요소들에 있어서는 다른 DSLR 카메라 혹은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들과 비교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각 채널 센서의 레이어 배열에서 오는 문제로, 가장 바닥에 위치한 R채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한계를 떠안고 있으며, 느려터진 저장속도 문제는 SD14때보다 더욱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이런 작은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 사람들은 한 컷 신중하게 찍고, 저장이 끝날 때까지 수 초에 이르는 시간을 진득하게 기다리길 원하지 않는다.

※ 그나마 다행인 건, DP1의 펌웨어는 지속적으로 버전업되고 있으며, 지난 몇 차례의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이런 기다리는 시간을 상당 부분 단축해냈다는 것이다. 만일 초창기에 DP1을 구매하여, 구버전 펌웨어가 적용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면, 반드시 펌웨어를 업데이트할 것을 권한다. 아마 카메라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DP1의 두 가지 특징과 두 가지에서 불거지는 단점을 말해봤다. 참 난감하다. 단 하나의 화각, 그것도 광각, 오로지 결과물 품질만 좋은 센서, 느려터진 처리 속도. 여느 똑딱이는 물론, DSLR 카메라까지 고려해봐도 이런 엉뚱한 디지털카메라는 없다. 만일 누군가가 이 카메라를 염두에 두고 이른바 똑딱이를 물어온다면 아무래도 만류할 것 같다. 남한테는 써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은 카메라다.

그렇다면 나는? 글쎄.. 어지간한 엔트리급 DSLR카메라의 번들킷을 사고도 남을만큼 비싼 카메라이기에, 선뜻 구매의지를 세울 수는 없겠다. 하지만, 막상 쓰게 된다면 꽤나 즐겨 쓰지 않을까? 모호하기는 하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엉뚱한 카메라에게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나는 유난히 하늘 사진을 많이 담았다. 주로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기에, 특히 퇴근 무렵에 볼 수 있었던 유난히 타오르던 노을을 담기에는 가방 속에 정리되어 있던 커다란 DSLR 카메라가 어울리지 않았다. 반면, DP1은 늘 허리춤이나, 운전석 옆 콘솔박스에 꽂혀있었다. 신호 대기중일 때 가벼이 꺼내서 찍고 넣으면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작업은 SPP를 통해 많이 메울 수 있었다.



※ 물론, DP1의 느린 기동 속도는 이처럼 신호가 바뀌어 허겁지겁 출발해야 하는 불상사를 야기하기도 한다.......ᅳ,.ᅳ;;



찰나의 거장이라 불리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그의 사진을 하나의 장르로 굳이 표현하려 한다면, 그것은 스냅사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벼이 일상을 담고, 소소하고 서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그런 스냅사진, 물론 그렇게 나온 사진이 주는 파급효과는 가볍다는 표현과는 전혀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DP1이 갖는 사진에 있어서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가벼이, 은은하게 남기는 일상의 스냅, 조용히 떠나는 나홀로 길거리 출사, 사진 한 컷 한 컷에의 감정 이입. DP1이 기계적, 전자적으로 커다란 단점을 갖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번쯤 쓸만한 카메라라는 생각을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그마 DP1, 그리고 나 홀로 떠나는 길거리 출사...

※ 하늘을 가로지르는 다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인물 (아트케인 작, 조 루이스에서 모티브를 따와봤습니다)


※ 과장


※ 기타리스트 유병열, 뮤지션의 수수함.



※ 버스정류장의 꽁초


※ 낙서


※ 우산


※ 옛날 맞춤법


※ 화려한 도시, 버려진 마을


※ 서울의 야경


※ 아이



※ 비 갠 후..


※ 피맛골 고갈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