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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원고작업

Inside Story of TTP - 첫 번째 이야기 : 가방의 격을 깬 씽크탱크포토, 기행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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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메신저로 URL 하나를 보내왔다. 새로운 가방 회사라면서, Test Drive를 모집한다고, 한 번 응모해보라고 말이다. 카메라 장비 운용을 편하게 해주는 쪽으로 특화된 제품군을 만들고 있으며, 아직 정식 런칭한 회사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친구는 캐나다로 어학연수 중에 있었고, 보내준 URL은 미국 회사였다. 안 되는 영어를 더듬거려가며 Test Drive에 응모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국어였고, Test Drive를 알게 된 경위 등을 물었다. 그리고나서, 가방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일단의 제품 꾸러미를 건내 받았다. 이것이 나와 씽크탱크포토의 첫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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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씽크탱크포토 설립 맴버.
왼쪽부터 사장 겸 디자이너 덕 머독, 디자이너 마이크 스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은퇴하고 씽크탱크포토 일에 매진하고 있는 커트 로저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기자를 역임하고,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중인 딘 피츠모리스.



씽크탱크포토는 현장을 뛰는 사진가들과 카메라가방 전문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설립한 전문가용 카메라가방 제조회사다. 사장이자 디자이너인 덕 머독은 30여년간 카메라가방만을 디자인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씽크탱크포토 회사 설립 이념을 수립했다. 그는 오직 사진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판매나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의 말은 무시하라고 강경하게 말한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기자인 커트 로저스, 딘 피츠모리스와 함께 처음 내놓았던 가방은 수요과 공급의 법칙, 그리고 손익분기점의 계산 속에서 도저히 성공할 수가 없는 상품이었다. 전세계 수많은 카메라 인구 가운데 단 몇 %도 채 되지 않는 현장의 보도사진가들, 씽크탱크포토의 첫 가방들은 이들에게만 철저히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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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트팩 시리즈. 왼쪽부터 Speed Demon, Speed Freak, Speed Racer


씽크탱크포토는 첫 런칭에서 스피드디먼, 스피드프릭, 스피드레이서라 이름붙인 벨트형 가방 3종과, 벨트를 포함한 각종 파우치 12종 세트, 6종 세트, 그리고 이들 각각의 파우치 등을 선보였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한다면, 카메라 바디는 근본적으로 가방 안에 있어서는 안될 장비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즉, 이들 가방들은 렌즈 및 플래시 등 액세서리를 넣을 공간인 동시에, 이들을 교환 장착할 수 있는 작업공간이라는 개념만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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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Pro Modulus Speed Set, Modulus Speed Set. 현재는 두 세트상품 모두 단종되고, 보다 간소화시킨 Modular Set라는 제품이 나와있다.


나는 이들 가운데 12종의 파우치 및 벨트로 구성된 프로 모듈러스 스피드 세트를 받았다. 벨트와 하니스, 그리고 몇 개의 파우치 등이 갖춰져 있었으며, 나는 그 중에서 필요한 걸 골라서 착용하면 됐다.

이 가방을 처음 쓴 건, 창경궁과 덕수궁, 숭례문에서 몇 종의 새와 건물을 담으러 나갔을 때였다. 마치 탄띠를 두르듯 허리에 두르는 이 시스템은 그동안 숄더백 혹은 소형 벨트팩 이외의 카메라가방을 들고 나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무게가 1.6kg을 넘어서는 400mm급 줌렌즈까지 휴대한 채 하루종일 걸어다녔음에도, 몸에 오는 피로가 확연히 적었다. 다만, 이걸 착용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좋았으나, 촬영 장소로 이동, 혹은 촬영 후 복귀할 때가 문제였다. 이걸 착용한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너무 튀는 스타일이 되 버리는 데다가,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에서 각각의 파우치가 따로 떨어져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차지하는 부피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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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최초 통화했던 본사 담당자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나는 사용중인 가방을 메고 나갔다. 이번엔 허리 대신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방의 단점으로 이동할 때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었다.

Test Drive라는 개념, 아마 씽크탱크포토가 출범하던 2005년 당시, 국내의 컴퓨터 부품업계에서는 이미 필드테스트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카메라 업계에서는 생소했다. 특히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Test Drive는 한편으로는 꽤 신선한 모험이었을 게다. 물론, 마케팅을 목적으로 뿌려지는 필드테스트와 달리, Test Drive는 일정 기간 체험 후, 제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지만, 이런 시도가 있다는 것부터가, 제조자와 사용자 간 대화와 협력을 전제로 둔 거라고 간주할 수 있겠다.

첫 양산품이 출고되고, 시장에 풀린 후의 얘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몇 가지 신제품과 함께, 첫 양산품에 대한 리뉴얼이 이루어졌다. 출시된 지 불과 몇 달만의 얘기다.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긍정적인 반응은 ‘시정 요구사항이 즉각 반영되는구나’였다.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컸다. 개선되었음에도 부정적인 반응? 너무 짧은 리뉴얼 사이클로 인해 판매자는 재고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어져 버리고, 기존 구매자 또한, 너무 짧은 기간만에 구형이 되어버리는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끊임없는 개선 노력은 누가 봐도 나쁠 수가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상업적 논리에는 맞춰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당시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거울삼아, 리뉴얼 작업을 이어지되, 최소 몇 개월 이상의 텀을 두게 되었다.


그저 편집기자였고, 취미삼아 사진을 찍을 뿐이었던 내가 씽크탱크포토의 한국 디스트리뷰터를 맡은 건, 이후로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였다. 디스트리뷰터가 되자마자, 나는 공부를 해야 했다. 영어공부? 아니다. 영어는 여전히 매우 서툴지만, 당시에 해야했던 공부는 영어가 아니었다. 내가 배우고 외운 건 가방을 만드는 자재에 관한 얘기, 가방을 생산하는 부분에 대한 얘기였다. 이걸 알지 못하면, 씽크탱크포토 가방의 단점을 인식하고도, 현실적인 개선안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씽크탱크포토 가방은 다른 가방들과 달리, 모든 면에 있어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명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기능성 가방이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전문가 대열에 합류했어야만 했다.


* 2007년 P&I 쇼에서 본사 소속 양인억 실장(오른쪽)과 함께.


씽크탱크포토에서 가장 대중적인 가방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어반디스가이즈 시리즈를 얘기할 것이다. 이 어반디스가이즈 시리즈는 한국에서 처음 주창되어, 첫 모델인 어반디스가이즈 40과 50이 국내에 우선 런칭되었다. 그간의 씽크탱크포토 가방이 오로지 전문 사진가들만을 위하는 가방이었다면, 이들 두 가방은 씽크탱크포토 가방에 대중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들이 국내에 도입되는 시점에서 내가 씽크탱크포토의 한국 디스트리뷰터를 맡은 건 어쩌면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반디스가이즈 시리즈를 런칭하면서, 나는 대대적인 Test Drive 작업을 벌였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응모했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씽크탱크포토를 국내에 공급함에 있어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나는 신문이나 잡지 등의 광고가 아닌,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는 형식의 마케팅을 위주로 홍보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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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rban Disguise 40과 Urban Disguise 50. 한국내의 시장 사정을 반영해 만들어줄 것을 요청, 그 결과로 선보였으며, 2006년 말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런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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