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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사용기

레노버 씽크패드 X1, 본격적인 휴대용 노트북으로의 도전!

군복무 시절, 전투기 엔진 정비를 위한 군용 386 노트북을 접했었습니다. 야전에서 운용하기 위해 매우 튼튼하게 만들었고 폭우에도 끄떡없게 구성한 노트북이었죠. 화면 크기는 아마 12인치 정도였을 겁니다. 흑백 TN 패널이었죠. 어차피 DOS 환경이었던 터라 흑백이라 문제될 건 없었습니다. 다만 이 노트북 무게만 10여kg에 달하고 크기도 요즘 나오는 슬림 PC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크고 두꺼웠죠.

어디까지나 군용 특수 노트북이었으니까요.

컴퓨터 하드웨어 필자생활을 시작한 지난 1997년부터 제 손을 거쳐간 노트북이 제법 됩니다. 지난 2005년에는 십 수 종의 노트북을 리뷰한 기억이 있군요. 하지만 이때도 제 수중에 제 소유 노트북은 없었습니다. 아직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가 적절히 구축되지 못한 때라 노트북을 갖고 야외에서 작업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터와 집에 제 손에 맞는 컴퓨팅 환경을 갖춰둔 때였던지라 노트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집에 노트북이 있긴 했습니다만 제 것이 아닌 프로그래머 마눌 것이었죠.


그러다가 2007년에 들어서 휴대성 좋은 11.1인치 노트북을 제 첫 노트북으로 장만했습니다. TG에서 내놓은 에버라텍 1500이라는 모델이었는데요, 11.1인치로 작고 가벼우면서 당시 제가 요구하는 성능은 무난히 낼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메모리 뱅크가 하나 뿐인데다 하우징이 통짜라 메모리 업그레이드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만 ULV 코어듀오 CPU를 얹고 최대 성능으로 대략 4시간 정도 쓸 수 있는 모델이었죠. 이 노트북은 이후 미국, 독일 출장, 홍콩 취재를 거치며 제 필수 기기가 되었습니다.


*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사진입니다. 사진촬영 중 휴식시간에 막간을 이용해 노트북으로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는 중이었죠.


하지만 이때도 노트북은 아쉬울 때의 보조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노트북은 아주 잠깐씩 공용 인터넷을 탈 때와 간이로 원고를 작성할 때만 썼죠. 3년 남짓 썼지만 실제 활용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쯤 그간 쓰던 에버라텍 1500을 도태시키고 맥북에어 11.6인치 모델로 바꿨습니다. 여전히 노트북의 필수 요소를 휴대성에 두고 있었던지라 무조건 작고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죠. 에버라텍 1500도, 맥북에어도 모두 11인치급 모델입니다. 그리고 이 맥북에어는 다음 세대 모델이 나온 지금도 아무런 불편 없이 노트북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2007년에 비하면 환경부터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단 아이폰으로 촉발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고, 이것은 무선 데이터 통신망이 대중화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국망인 3G망, SKT의 T로그인과 KT의 에그로 대표하는 와이브로망이 근거리 네트워크로 대체할 수 없는 불특정 지역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끔 해준 거죠. 제 수중에도 아이폰 3Gs가 들어왔고 늘 남아도는 데이터 패킷을 활용하고자 맥북에어와 연동시켜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모바일 네트워킹이 맥북만 되는 건 아닙니다만, 마침 이 시기에 이리 쓰기 시작하면서 노트북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죠.

맥북에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노트북의 활용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그 까닭 가운데 모바일 네트워킹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한 번 충전으로 대략 5시간 가까이 쓸 수 있다는 점, 애플 특유의 포인팅 시스템으로 마우스를 따로 갖추지 않고도 포토샵 작업 등 포인팅 디바이스 비중이 높은 작업에 불편함이 없다는 점, SSD를 저장매체로 하기 때문에 쓰면서 마구 흔들려도 문제없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워낙 작고 얇고 가벼워 늘 가방에 넣어 휴대하고 다니며, 집에서도 데스크톱을 켜는 대신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거실 쇼파에 앉아 맥북에어를 쓰는 날이 훨씬 많습니다. 전에는 노트북이 서브였는데 이제는 데스크톱이 그저 파일 저장소에 불과해져버렸죠. 물론 본격적으로 원고작업을 하거나 사진 작업을 할 때는 데스크톱을 켭니다만..

그런데 이 맥북을 쓰면서 역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죠. 좋냐 나쁘냐, 옳냐 그르냐를 떠나 우리 나라 인터넷 환경은 철저히 인터넷 익스플로러 위주입니다. 각종 뱅킹, 관공서, 쇼핑몰 결제 등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동작하기 일쑤죠. 그나마 최근들어 오픈뱅킹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64GB용량에 윈도우까지 깔아두고 쓰기는 무리입니다. 외장 하드디스크나 메모리를 꽂아 쓰는 것도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죠. 이런 까닭에 맥북에어를 즐겨 쓰면서도 윈도우 기반 노트북을 참참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노트북이 레노버 씽크패드 X1입니다.

* 왼쪽이 가장 얇은 곳 실측 두께, 오른쪽이 가장 두꺼운 곳 실측 두께입니다. 가장 얇은 곳은 맨 끝에서 최단 두께를 측정한 것이 아니다보니 다소 두껍게 나왔습니다. 제조사측 사양으로는 17mm라 합니다.


씽크패드 X1은 씽크패드 시리즈가 IBM에서 레노버로 넘어간 이후 처음 제 맘에 들어온 모델입니다. 13.3인치급으로 다소 크긴 합니다만 가장 두꺼운 곳이 20mm에 불과한 얇은 두께에 1.69kg이라는 가벼운 무게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일단 휴대성이라는 부분에서는 적당한 타협선을 두고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

야외에서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제조사 측에서는 5시간 이상 쓴다고 밝히고 있지만 직접 테스트한 후배의 말로는 일반적인 운용환경을 가정하고 썼을 때 대략 3시간 반 정도 운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HDD 대신 SSD를 넣는다면 맥북에어 11.6인치와 대략 비슷한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맥북에어 13.3인치가 대략 7시간쯤 쓴다니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습니다만, 대신 완전히 충전할 때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전원 공급에 대한 불만도 적당히 타협하고 있습니다. 도킹시키는 별도 배터리 모듈을 연결하면 10시간 정도 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뭐, 저라면 별도 배터리 모듈까지 들고 다닐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시원시원하게 커다란 키보드가 인상적입니다. 노트북이지만 타자 칠 때 불편함이 훨씬 적습니다.


또 하나의 눈여겨볼 것은 포인팅 디바이스입니다. 그간 여러 윈도우 노트북을 접하면서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이것인데요, 따로 마우스를 휴대한다는 것은 노트북을 쓰기 위해 탁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노트북 취지 그대로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장치가 아니게 되는 셈이죠. 그런데 이 씽크패드 X1의 포인팅 디바이스는 지금까지 접해본 윈도우 노트북들 가운데 단연 으뜸입니다. 우선 씽크패드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빨콩'이 있습니다. 이를 잘 쓰는 사람은 이 포인팅 스틱만으로도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니 무조건 환호할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높이 평가한 건 포인팅 스틱이 아닌 터치패드입니다. 지금까지 접해본 윈도우 노트북 중 가장 큰 터치패드를 갖추고 있습니다. 단지 크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간 불만이었던 터치패드 세로 길이까지 길어졌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영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이니 훨씬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됩니다. 실제로 포인터 이동, 터치, 스크롤 등 작업이 매우 부드럽고 가벼웠습니다. 이 정도면 따로 마우스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 터치패드가 클 뿐 아니라 감도도 매우 좋습니다.


불안정한 야외에서 운용하는 기기인 만큼 내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LED 백라이트가 들어가면서 매우 얇아진 상판은 마그네슘 합금입니다. 게다가 패널 겉에는 고릴라글라스를 써서 칼로 긁어도 흠집조차 나지 않습니다. 힌지는 180도 이상 넘겨지기 때문에 너무 꺾여서 망가질 위험도 적습니다. 하판은 탄소섬유를 써서 적당한 탄성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씽크패드 X1은 여기에 투수성을 더했습니다. 맥북들이 모두 취약한 부분이 바로 침수인데요, 씽크패드 X1는 키보드 상판에서 바닥으로 구멍을 뚫어 액체가 흘러 밑으로 빠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침수되긴 합니다만, 그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게 커피 한 잔 정도 분량은 아닙니다. 적어도 침수 상황에서 전원을 꺼서 데이터를 보호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죠. 맨 앞의 물방울 맺힌 키보드 사진은 제가 실제로 연출한 후 촬영한 사진입니다. 다만 옆에서 컵을 엎었다든지 하는 상황과 같은 측면으로부터의 침수에는 무방비라는 점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 키보드는 백라이트를 채용해 어두운 곳에서도 별도 조명 없이 쓰기 편리합니다. 고릴라글라스로 흠집을 막은 디스플레이 패널, 투수성을 갖춘 키보드 등은 불안정한 야외에서 운용성을 높여줍니다.


물론 불만이 없는 건 아닙니다. 13.3인치임에도 불구하고 해상도가 1366×768인 점은 정말 최악이라고밖에 생각 안 됩니다. 값이 좀 더 비싸더라도 1440×900 혹은 1600×900 해상도가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동영상 감상이 아닌 한 낮은 세로해상도는 윈도우 운영체제 기반으로 활용함에 있어 커다란 핸디캡을 줍니다. 제목표시줄, 메뉴바, 작업표시줄, 상태표시줄을 빼고나면 남는 공간 정말 좁습니다.

국내 시판 모델에는 USIM칩을 연결해 별도 무선 데이터망 접속 기기 없이 곧장 광대역 무선 데이터망에 연결할 수 있는 기능이 빠져있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통신사와의 이해관계를 풀어야 하는 문제다 보니 그렇겠죠. 이럴 때는 슈퍼갑인 양 힘을 부리는 국내 이동통신사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따로 ODD가 달려있지 않음에도 각종 단자들이 대부분 뒤에 달려있다는 점도 이상합니다. 특히 씽크패드 X1처럼 디스플레이 패널이 완전히 뒤로 넘어가는 모델이라면 뒤에 단자가 몰려있을 때 더해지는 불편함이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측면에 단자를 둔 것보다 아무래도 쓰기 불편하기도 하죠.


몇 가지 단점을 나열했고 그 중에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윈도우 노트북 가운데서는 이 모델을 단연 으뜸으로 쳐주고 싶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액세서리 없이 노트북만 달랑 들고 나갔을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쓸 수 있냐입니다. 씽크패드 X1은 자체 전원만으로 3시간 이상 쓸 수 있고, 마우스가 없어도 대부분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불편이 덜합니다. 13.3인치는 휴대하기 살짝 부담되기 시작하는 크기입니다만 두께가 얇아 휴대성을 높여주며 무게도 가벼운 편에 듭니다.


씽크패드 X1의 은 초기 발매가는 코어 i5 2520M과 320GB HDD 모델로 160만 원대 후반, 160GB SSD를 얹은 모델이 190만 원대 후반이라고 합니다. 최근 출시 보도자료들에서 이 노트북을 가리켜 맥북에어 13.3인치 대항마로 소개하곤 했는데요, 맥북에어보다는 맥북프로 13.3인치 모델에 대응하는 모델로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