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철학도였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일한 곳은 가방 회사였다. 엉뚱하게도, 그는 그 가방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것도 무려 30년을 일했다. 그가 일한 회사는 카메라가방으로 그 어느 브랜드보다도 잘 알려져 있을 로우프로였다.
그 30년동안, 로우프로는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포토그래퍼를 위한 전문 카메라가방이었던 로우프로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해,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카메라가방 브랜드가 되었다. 덕 머독은 그 30년동안 이들 로우프로 카메라가방을 디자인했다.
그는 철학도였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생각에 따라 어떤 분야에도 녹여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철학이라는 것이 배제된 분야는 어떤 깊이를 갖지 못한다. 롤스로이스, 벤츠, BMW는, 처음 보는 순간이라도 차량 라디에이터 그릴을 보는 순간 브랜드를 연상시킨다. 브랜드가 갖고 있는 철학이 디자인의 일관성으로 표출된 결과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형상이 아니더라도, 척 보면 어느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 브랜드가 가진 철학이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어 있어서다. 그가 대학을 그저 타이틀로만 나온 게 아닌 이상, 그의 철학적 시각은 디자이너의 고집과 맞물려 로우프로라는 양적으로 팽창한, 모든 사진사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을 가진 카메라가방 회사에 대해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지난 2008년 3월, 덕 머독이 동료 디자이너 릴리 피셔와 함께 아시아권 세일즈트립 중 한국을 찾았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보기 위해 경복궁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다
그는 꿈꿨다. 진정한 프로 사진가들을 위한 카메라가방을 꿈꿨다. 로우프로에서의 30년이라는 시간은 그를 수석디자이너 및 부사장으로의 지위를 선사했다. 평안한 여생이 보장된 지위다. 그는 그걸 뿌리치고 나왔다. 그가 꿈꿔온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일장춘몽일지라도, 그 꿈을 구현해내고자 그가 가진 모든 걸 걸고 나왔다.
* 마이크 스텀과 함께 선 덕 머독. 마이크 스텀은 덕 머독의 디자인을 갖고, 마치 그와 한 몸인 양, 생각하는 대로 가방을 만들어냈다.
만일 그가 혼자서 꿈을 실현하려 했다면 그가 꾼 꿈은 그저 허망한 신기루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회사 설립에 대한 이념을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면서 그와 함께 할 동료를 모았다. 그가 최우선으로 삼았던 원칙은 자본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 수요와 공급에 관한 자본주의적 원칙에 따른다면,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카메라가방 회사가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본 뿐일테고, 이건 처음부터 그가 꿈꿔온 사상에 맞질 않았다. 이런 생각을 깔고 오랜 시간동안 함께 가방을 만들었던 엔지니어, 마이크 스텀이 합류했다. 그리고, 프로 사진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커트 로저스와 딘 피츠모리스가 공동 창업자로 모였다. 30년간 카메라가방을 만들었지만, 사진을 찍는다고 찍어본 적이 없는 덕 머독에게, 커트 로저스와 딘 피츠모리스는 진정한 프로 사진가들을 위한 가방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을 구체적으로 구현해줄 든든한 브레인이 되어주었다.
* 커트 로저스와 딘 피츠모리스. 세계적인 사진기자로 인정받은 두 사람은 씽크탱크포토를 위해 든든한 브레인이 되어주었다.
이들 4인은 촬영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가방을 개발하기 위해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 커트 로저스와 딘 피츠모리스가 현재의 문제점, 그리고, 요구사항을 열거했으며, 덕 머독은 마이크 새텀과 함께 이를 구체화시켰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스피드 디먼이라 명명된 소형 벨트팩, 모듈러스 시스템이라 명명된 벨트-파우치 시스템이었다. 덕 머독은 이 가방을 기반으로 미국 국내 판매망 확보 및 전세계 공급을 위한 디스트리뷰터 확보 목적의 여행길에 올랐다.
꿈을 현실로. 씽크탱크포토의 시작
2005년의 시작, 그것은 씽크탱크포토라는 회사의 시작과도 같았다. 이 해 3월 한국을 찾은 그는 이전에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되어 있었던 테스트드라이브 참여자를 기반으로 완성된 가방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 2005년 3월, 대학로 민들레영토에서 브랜드 및 제품에 관한 설명회를 가졌다. 사진은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가방들 중 스피드디먼 최초 모델이다.
본격적으로 가방을 런칭한 직후부터, 덕 머독은 매우 바빠졌다. 그의 경영철학은 ‘오직 사진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판매나 마케팅 담당자의 말은 무시해도 좋다’였다. 의도한 바는 맞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프로 사진가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은 그가 가진 시간을 압박해왔다. 그는 씽크탱크포토의 가방 디자이너로 가방을 디자인하고, 또, 씽크탱크포토의 사장으로 판매망 확충을 위한 세일즈트립을 이어나가면서,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이어갔다. 이런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사진가들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가 만든 가방에 불만을 제기했던 이른바 컴플레이너들 조차도, 양방향 소통을 추구하는 덕 머독의 경영방침으로 인해 후원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의 몸은 하나고,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하루에 24시간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내에 산재되어 있는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집무실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와중에도 사진가들의 요구에 따른 새로운 가방을 개발해내야 했다. 그에게 있어 개발은 그가 씽크탱크포토를 설립한 까닭이었고, 세일즈트립은 그 꿈을 위해 유지해나가기 위한 현실이었다. 무엇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새로운 도전. 가방도 진화한다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이던 그는, 2007년 늦가을쯤 가진 팀미팅 즈음에 새로운 식구를 영입했다. 역시 오랜 시간동안 함께 디자이너로 일했던 릴리 피셔였다. 그런데, 그녀를 영입한 까닭은 그의 일을 대신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씽크탱크포토라는 브랜드는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제법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특히 사진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가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덕 머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현장을 뛰는 사진기자들을 통해 프레스 시장의 변화를 끊임 없이 들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처하고자 했다.